Page 5 - 한비21 (제6호) 2024년 12월 17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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        와 통화를 하면서 물었다. "그

        래도 정예 특수부대인데, 움직

        임이 뭔가 어색하고 이상하지

        않았나요?"라고  묻자  돌아온
        답변은 "아휴! 요즘 세상이 어

        떤 세상인데, 이건 군인 정신이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1980

        나 저 친구들 능력 문제가 아니

        에요. 요즘 군인들은 예전 군인

        이 아니에요! 알꺼 다 알죠!. 자

        신들이 봐도 이건 아니다 라는

        생각했을 거예요. 명령은 따라
        야 하고 그렇다고 강압적인 진

        압을 할 수 없으니 그게 자연

        스럽게 행동에 배어나는 거죠.

        그리고  707같은  애들은  이런

        데 몸 사렸을 겁니다. 제대 후 2024
        상황에 특화된 부대가 아니에
        요. 시쳇말로 다 직업군인들인




        까지 생각해야죠! 이런 일로 인

        생 망치고 싶겠어요?"라고 반 대해 깜깜히 그 자체였다. 그곳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불과  작년에  이러한  의사를
        문한다.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금방  밝힌 그들이 어떻게 이러한 시

         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계 알기 힘든 시절이었다.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대착오적이며, 무모한 짓을 벌

        엄해제까지 짧지 않은 시간동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? 초등 이고 옹호할 수 있을까? 계엄령

        안 많은 생각들이 교차되었다.  학생 손에도 휴대폰이 들려있 하에서 시민들이 왜 폭행과 고

          지인들의  답변은  추후  국회  고, SNS를 통해 전 세계에 실 문을 당하고, 목숨을 잃어야만

        국방위 조사에서 하나씩 드러 시간 라이브 중계를 할 수 있는  했는지에 대한 기억과 교훈, 헌

        나는 군 관계자들의 증언이나  세상이다.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법을 그들은 잊었을까? 끝까지
        상황 설명과 크게 다르지 않았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계엄령이 무엇인지 책으로만,  따져 묻지 않을 수 없다.

        다.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영화로만 보던 세대가 대다수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수준낮은  보수  득세와  꼰대

          "성공하면 혁명, 실패하면 반 를 이루는 시대가 되었다. 서슬  훈수질만 난무

        역, 반역은 곧 총살"이라는 심 퍼런 당시 군부의 계엄령과는  잠시나마 G7 클래스를 자랑

        각성을 깨닫고 있기 때문일까?  달리 계엄의 무서움을 제대로  하던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초

          "몰랐다"만 남발하며 불쌍한 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이 태반 유의 계엄 사태에 대해 외신들

        표정을 짓는 장성들의 언행을  이다.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은 집권 권력에 대한 비판에 가

        보며 만감이 교차한다.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그럼에도 우리는 기억한다. 폭 세했다.

          1980년 5월 계엄군은 광주 시  압과 불의에 굴하지 않고, 민주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특히  미국쪽  언론이나  정가
        외곽을 봉쇄하고, 언론을 사전 주의와 인권, 평화를 위해 저항 반응은  '어처구니  없는  무모

        에 통제했기에 많은 시민들이  한 5·18 정신을 헌법에 담자는  함  그  자체'이다.  특히  계엄

        총검에 희생되어도 외부에서는  건 현 대통령의 공약이기도 했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7 페이지에 계속

        시 내부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 다. 집권여당도 이에 찬동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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